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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이라는 말보다 '잘~'ㄷ도는 '잘잘'

작성자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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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로 2002년 12월 25일 16시 48분에 남긴 글입니다.
백기완 선생님을 만나고


대학로와 통일문제연구소, 그리고 학림 다방과 우리말

백기완 선생님을 뵙고

지난 12월 20일 어제 저녁 대학로 서울대 병원 옆에 있는 통일문제연구소로 백기완 선생님을 찾아가 뵈었다. 내가 참여한 '우리말 살리는 겨레모임'에서 백 선생님을 '2002년 우리말 으뜸 지킴이'로 뽑았는데 전화만 드리고 찾아뵙지 못했기 때문에 해가 다 가기 전에 인사도 올리고 선생님 말씀을 듣기 위해서였다.

잠실 한추회 사무실에서 우리 모임 회보 '우리 말 우리 얼'과 '한글날 국경일 제정 범국민 추진위원회'에서 펴낸 ' 우리의 소원은 한글날 국경일이오' 란 책을 한 가방 들고 대학로로 갔다. 4호선 전철 대학로역에서 내려 3번 출구로 나오니 거리에 젊은이들이 바글바글 시끄럽고 영어 간판 불이 눈부시다. 오랜만에 와봐서 연구소 가는 길을 찾기 위해 이쪽 저쪽 살피다보니 '학림' 이란 간판이 보이는데 눈에 익다. 대학생 때 그리고 졸업 뒤에 국어운동대학생회 모임을 위해 드나든 다방인데 아직도 그대로 있었다.

문득 34년 전 학생 때 추억이 떠올라 길 건너편 서울대학이 있던 곳을 건너다보니 영어 간판 불빛만 눈에 들어온다. 마음이 무거웠다. 1968년 서울 문리대에서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동국대의 국어운동대학생회 회원들이 모여 정부에 한글전용법을 철저히 지키고 한글과 우리말을 살려 쓰자는 건의문을 보내고 거리에서 그 선전문을 뿌리는 행사를 한 일이 있다. 그 때 방송국에서 취재를 나왔는데 내가 말한 것이 낮 12시부터 밤 12시까지 뉴스시간마다 나와서 시골 고향에서 내 어머니가 듣고 놀라기도 하고 자랑스러워하셨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때 텔레비전도 많지 않을 때라 많은 국민이 라디오 뉴스를 즐겨 들었다. 한글학회 한갑수 이사가 '우리 말 바른 말' 방송을 수 년 동안 하실 때였다. 시골에선 흔하지 않은 금성 라디오를 밭에 일하러 갈 때도 들고 가서 듣던 우리 어머니가 그 조그만 라디오에서 서울로 유학간 아들 목소리가 나오니 얼마나 놀라고 기뻤던지 마을 사람들에게 당신의 아들이 큰 출세를 한 것처럼 자랑하셨다고 한다. 고운이름자랑하기 발표를 하던 강의실, 각 대학 회원들이 체육대회를 하던 운동장은 없어지고 맥도날드 식당에 젊은이들이 가득한 풍경이 내 마음을 무겁게 했다. 그 무거운 마음을 달랠까 학림다방에 들어가려 2층을 올려다보니 창가에 유리로 ' coffe & beer'란 글씨가 눈에 들어와 되돌아서 통일문제연구소로 갔다.

선생님 댁으로 가니 오 세철 연세대 교수와 또 다른 분이 계셨다. 선생님께 영어 때문에 큰 일이라고 말씀드렸더니 우리 말만 살리려해서 안 되고 미국 세력을 몰아내야 그 문제가 풀린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새내기'란 말을 처음 쓰기 시작할 때 이야기를 하셨다. '감옥소에 갔을 때인데 교수들도 들어왔다. 그들의 입에서 나온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란 말을 듣고 그 말을 '새내기 교육'이라고 하자고 한 일이 있다' 고 말씀하셨다. 그 뒤 감옥에서 나와서 학생들에게 강연을 하면서 '새내기'란 말을 퍼트리고 쓰이게 된 것이다.

많은 한국인들이 백 선생님을 반독재 투쟁가, 민주화 추진 운동가로만 알고 있으나 그 못지 않게 우리 말과 얼을 지키고 살려 쓰기 위해 남달리 애쓰는 우리 말 살리기 운동가요 실천가이시다. 나는 오래 전부터 이 분의 애국, 애족 정신과 자주 정신을 알고 좋아했는데 실제 삶에서도 그 정신을 실천하시는 모습, 우리 말을 살려 쓰는 모습을 보고 감명을 받고 존경하고 있었다.

그래서 10여 년 전 조선일보가 '한자는 국제 글자다'라면서 한글 죽이기에 앞장서 날 띌 때 그것을 막기 위해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에서 강연회를 했는데 그 때 안 호상 박사, 김 동길 교수, 이 진우 변호사와 함께 연사로 모신 일이 있다. 조선일보는 김 영삼 정권이 들어서자 마자 일본식 한자혼용을 실현하기 위해 1쪽에 10회가 넘게 '한자 혼용 주장'을 대문짝만하게 연재하고 있었다. 그래서 한글단체는 그와 맛서 강연회를 열기로 한 것이었다.

그 때 '한글문화단체 모두모임' 이사회에서 나는 강력한 투쟁을 제의했고 연사로 백기완 선생님을 모시자고 했다. 안 호상, 공 병우, 한 갑수, 허 웅 선생들 어른들께서는 뜻밖이라 생각하셨으나 매우 급박한 상황이고 오동춘, 최기호교수 들이 동조해서 백 선생님을 모시기로 하고 그 책임을 내가 맡았다. 그리고 전교조 회원이었던 김두루한 선생과 함께 백 선생님을 찾아가 뵙고 조선일보의 잘못을 일깨워주실 것을 부탁드렸더니 쾌히 승낙하셨다. 그 강연회 전날엔 조선일보 노조 회보에 조선일보의 전태수 기자께서 한글 죽이기 위해 나선 회사의 잘못을 지적하는 글을 크게 쓴 일이 있고 우리는 밤에 급히 복사에 뒷날 강연회장과 거리에서 뿌리니 조선일보는 바로 연재를 중단했다.

통일문제연구소 송년회 자리에서도 백 선생님의 우리말 쓰기 실천 모습이 많이 보였다. 보통 술 마실 때 '건배!' 나 '위하여!'란 구호를 많이 외치는 데 그 모임에선 '아리아리!'라고 한 사람이 먼저 외치면 모든이가 '꽝!'이라고 함께 외쳤다. 제주도 해녀들 노래 소리와 비슷한 '이어차! 처라처라! - 투쟁!'이라고 외치기도 했다. 그리고 구호라는 말 대신 '울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 회원들은 '안녕'이란 말 대신 '잘잘'이란 말을 쓰고 있었다.

참으로 여러 가지 느끼고 배운 뜻깊은 송년회 자리였다. 모두 함께 잘 사는 세상이 빨리 오기 바라지만 말고 투쟁해서 쟁취해야 한다는 뜨거운 가슴과 삶을 가진 분들을 보며 내 모습이 한없이 작아 보이기도 했다. 우리말 살리기 운동을 하는 분 가운데 백 선생님처럼 토박이말을 살려 쓰고 우리말 식 새말을 만들어 퍼트리는 것을 세차게 비난하는 분들이 있는데 나는 그렇지 않다. 우리가 일제 한자말과 미국말을 그대로 갔다 쓰지 말고 우리말로 바꿔 쓰고 없는 말은 만들어 써야 된다고 본다. 미국말이나 일본이 만든 말을 빌어다 쓰는 편안함보다 처음 좀 껄끄러워도 우리가 만든 새말을 쓰자. '70년 대 감옥에 가니 감옥에 깔린 것을 '매트'라고 했다. 까래'란 우리말이 있는데 왜 그말을 쓰느냐고 말한 일이 있다'는 말씀이 귓가에 맴도는데 방송에서 '자석 매트를 사세요'라고 선전하고 있다. 그러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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