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02-02-18
[업그레이드 코리아/10대 국가과제] 5.노인에게 일자리를(下)
■경로당 확바꿔 복지 중심축으로
현재 전국에는 5만여 곳의 경로당이 모세혈관처럼 퍼져 있다.우리만이 갖고 있는 값진 노인복지 인프라다. 하지만 말이 '경로(敬老)'지, 잠시 여가를 보내는 공간에 불과하다.
겉으로만 경로사상 운운할 뿐, 정작 노인에게 필요한 프로그램은 갖추지 못했다. 정부에서 연간 난방비로 고작 30만원을 주는 게 지원책의 전부다.
진지한 노인정책 수립에 걸림돌이 될 바에야 차라리 경로당을 없애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협성대 이근홍(사회복지)교수는 ''기존 경로당을 노인복지의 일선 핵심조직인 가칭 '실버클럽'으로 확 전환하자''고 말했다. 조직은 유지하되 그 기능을 완전히 뜯어고치자는 주장이다.
사실 한국 노인들은 벼랑 끝에 몰려 있다. 최근 20년 새 평균수명이 10년이나 늘었지만 여전히 55세쯤이면 직장을 떠나야 한다. 핵가족화의 진전으로 가정에서도 설 땅이 좁아졌다. 이런 절박한 상황인데도 우리는 30~40년 전에나 맞는 경로당 조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사회복지요원 한 명이 10~30개의 경로당을 맡게 한 뒤 관내 구청.복지관.의료기관.대학.기업 등과 연계해 구직.봉사.의료.교육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모델을 제안했다.
보건복지부 산하에 실버클럽본부를 설치해 노후 프로그램을 개발하게 하며, 지역별로는 기존 노인복지관(전국 1백43곳)이 실버클럽을 지원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각종 지표로 볼 때 노인복지 시스템은 후진국 수준이다. 60세 이상 노인 중 자원봉사자는 6.7%에 불과하다. 미국은 40%, 호주는 17%가 참여한다. 각종 요양시설의 수혜 노인 비율도 전체의 0.48%에 불과하다. 선진국(5~7%)과 비교가 안된다.
이런 문제를 종합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일본의 '골드플랜 21(2000~2005년)'처럼 노후 생활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범국가적인 장기 노인복지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서울대 최성재(사회복지) 교수는 ''선진국들은 1930, 40년대부터 장기대책을 세웠는데도 고령화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우리의 경우 관심조차 두지 않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또 전문가들은 능력있는 노인을 실비만 지급하는 지역지도원으로 대거 위촉해 청소년 교육.문화재 보호 같은 지역공헌 업무를 맡기고, 가정간호 전문요원을 대거 양성하는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신성식.박현영 기자
■용돈 벌며 일하는 '봉사직' 만들자
활발한 사회활동과 안정적인 건강관리. 이 두 가지는 고령화 사회에서 노인들이 제2의 인생을 누리는 데 핵심 조건이다.
선진국들이 수십년간 이를 충족시킬 노인복지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우리는 고령사회(노인인구 비율이 전체의 14%)에 접어들 것으로 보이는 2019년까지 조속히 이 토대를 닦아야 할 처지다.
하지만 지금의 정부나 정치권의 태도를 보면 불안하기 짝이 없다. 세부 계획은 물론이고 중.장기 종합계획조차 세우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인데도 정책 입안자.결정권자들은 말로는 경로사상을 강조한다. 경로당을 노령화사회에 적합한 실버클럽으로 바꾸는 등 발상의 전환이 절실한 시점이다.
◇노인정책 총괄기능 만들자=노인 일자리 창출과 관련해 노동부는 55세부터 64세까지, 복지부는 65세 이상을 대상으로 한다. 노동부는 65세 이상 노인의 일자리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복지부도 일자리의 주무부처가 노동부라며 노인 일자리 창출에 주력하지 않는다.
지난해 국무총리실에 관계부처 및 민간전문가가 참여하는 '노인 보건.복지대책위원회'를 만들어 노인문제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책방향만 제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생긴 한시적 조직에 불과하다.
복지부나 노동부뿐 아니라 교육인적자원부.법무부.행정자치부.정보통신부.기획예산처 등이 참가하는 상시적인 정책조율 기구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실비형 일자리' 만들자=보건사회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인의 63%는 돈 때문에 일자리가 필요하다. 덴마크는 18%,독일은 33%가 돈 때문이라고 답한 반면 각각 62%, 42%가 '일하는 게 즐거워서'라고 응답했다.
보사연 변재관 박사는 ''연금.의료보장제도가 잘 돼 있는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 노인은 어느 정도의 소득이 있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면서 ''이 때문에 교통비와 식비 정도를 지급하거나 여기에다 약간의 소득을 얹어주는 실비지급형 봉사활동의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도 지난해부터 일선 시.군.구 당 연간 20명씩 총 1만여명의 노인에게 공원청소.교통지도 등의 봉사활동을 하되 하루에 3천~5천원을 지급하는 지역지도봉사원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강남대 고양곤 교수는 ''노인에겐 순수한 자원봉사의 개념을 적용하기 힘들다''면서 ''점심값이나 교통비조로 하루에 1만원 정도 지급하는 일거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건강한 노인 1만5천여명이 6만2천여명의 아픈 노인들의 말벗 노릇을 한다.
이 사업에 정부 예산이 연간 5백여억원 지원된다. 정부가 창출한 실비형 일자리다. 이 서비스에 가벼운 간병서비스가 포함된 덕분에 간병시설에 가야 할 돈 2천여억원을 절감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우리는 몇몇 지자체나 사회복지관만이 이런 서비스를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경로당이나 복지관에 나가길 싫어하는 외로운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말벗(실버시터)사업까지 등장했다.
주로 젊은이가 노인의 말벗이 되고 시간당 5천원을 받는다. 실버시터 업체인 하이버디 김명숙 이사는 ''노인 마음은 노인이 잘 알기 때문에 노인을 봉사자로 활용하면 효과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봉사 품앗이 활성화하자=노인봉사 조직이 만들어지면 봉사실적을 개인별로 데이터베이스화해 관리하자고 한다. 사회복지협의회가 최근 시행하기 시작한 품앗이 제도를 노인에게도 적용하자는 것이다.
한남대 임춘식 교수는 ''건강할 때 봉사한 노인이 몸져 누우면 종전의 봉사실적을 토대로 제3의 노인에게서 봉사 서비스를 받는 품앗이 제도를 활성화하자''고 말했다.
◇봉사 전문조직과 지원법률 만들자=현재 노인봉사는 복지부와 행자부가 따로따로 진행하고 있다. 복지부는 노인만을, 행자부는 계층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점이 다르다.
서울 북부노인종합복지관 박준기 과장은 ''행정조직이 따로따로 운영되다보니 봉사의지가 있는 노인이 많은데도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봉사진흥법률과 '한국노인봉사단'과 같은 전국 조직을 만들고▶봉사활동에 참여하는 노인들에게 상해보험 가입, 무료건강진단, 지역내 시설 할인카드 발급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하며▶우수 봉사자를 시상하는 등의 격려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신성식.박현영 기자
■독거 노인 관찰 아이디어
일부 지방자치단체.시민단체.복지관 등이 '야쿠르트 아줌마'를 동원하는 등의 참신한 아이디어로 혼자 사는 독거(獨居)노인들을 관리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서울 광진구는 자체 예산으로 거동이 불편한 기초생활수급자 또는 저소득 독거노인 5백30여명에게 매일 요구르트를 배달시킨다. 야구르트 배달원들은 서너개라도 쌓이는 집은 일일이 문을 두드려 노인의 상태를 확인한 뒤 담당 행정직원에게 알린다.
서울 서초구 '사랑의 소리'자원봉사자 20여명은 서너명씩 조를 짜 무의탁 노인 80여명에게 전화를 걸어 몸이 불편한 곳은 없는지 안부를 묻고, 전화 상담도 해준다.
노인들이 전화를 받지 않을 때는 인근 경로당이나 동사무소에 소재 파악을 부탁한다. 지난해 3월 출범한 '독거노인 주치의 맺기 운동본부'는 의사가 한달에 한번 이상 결연노인을 찾아가 진료하고 처방하면 사회복지사나 자원봉사자가 약을 타다 주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복지사나 봉사자는 의사 진료 후에도 노인의 상태를 살펴 의사에게 보고한다.의사 2백5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서울 중구는 노인이 노인의 어려움을 제일 잘 안다는 데 착안해 건강한 사람이 병든 독거노인을 방문해 말벗이 돼주는 '실버투실버(Silver to Silver)'사업을 실시 중이다.
또 서울 강서노인복지관의 60세 이상 노인들로 이뤄진 '한울돌보미'봉사단은 복지관이 마련한 반찬 등을 독거노인들에게 갖다주면서 말벗이 돼 준다.
박현영 기자
■노인 의료 대책은
''시어머니가 냉장고에 속옷을 숨기는가 하면 음식을 으깨고…. 어디 실비 요양시설이 없나요?''
최근 치매에 걸린 시부모를 모시는 한 맞벌이 주부가 서울치매노인상담센터로 보낸 하소연이다. 이 센터 이미송 사회복지사는 ''이 주부가 원하는 시설을 찾아주기 어렵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중증 치매환자는 4만여명. 이들은 치매 정도가 심해 가족이 돌보기 힘든 환자들이다. 현재 치매전문요양시설은 54곳으로 4천여명만 수용하고 있다. 나머지 3만6천여명의 치매환자를 둔 가정들이 이용할 시설은 없다.
65세 이상 노인 3백77만명 중 중증 치매노인처럼 장기요양이 필요한 환자는 74만명.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이 숫자는 더 늘어날 것이다.
복지부는 올해까지 시설을 늘리면 극빈층인 생활보호대상 노인들은 대충 커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문제는 대다수 서민들이 보호망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는 점이다.
보건사회연구원은 2005년까지 가정과 지역사회에서 환자를 돌보는 재가(在家)복지시설(가정봉사원 파견.주간보호.단기보호시설)을 현재 2백26곳에서 1천1백곳으로,수용시설을 94곳에서 5백50곳으로 늘리자고 제안했다.
또 전문인력을 2만명씩 양성하자고 했다. 이와 함께 소규모 시설이 곳곳에 들어설 수 있도록 요양시설의 설치기준을 대폭 완화하되 사후감독을 강화하는 안을 제시했다.
고령화사회에는 가장 골칫거리 중의 하나가 노인의료비다. 지난해 2조4천여억원.95년보다 3.8배 늘었다. 전체의료비의 18%나 차지한다. 정부는 노인 요양에 드는 비용을 제2의 건강보험.민간보험.세금 중 어느 쪽으로 충당할지 저울질하곤 있지만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 2000년 별도의 사회보험인 '개호(介護.곁에서 돌봐줌)보험'을 도입했다. 보험료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절반을, 가입자가 절반을 부담한다. 아파서 병원에서 치료할 때는 건강보험이, 요양할 때는 개호보험이 담당한다.
미국은 65세 이상 노인이 의무적으로 가입하는 사회보험성격의 노인전용 건강보험(메디케어)이 병원 치료비를 담당한다. 이 비용의 20%는 환자가 부담하며 노인들은 이를 커버하는 별도의 민간보험(MSP)에 든다. 대개 연간 6백달러를 부담하면 거의 모든 게 해결된다.
뉴욕=신중돈 특파원,신성식 기자
2002-02-21 09:53:03

